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(문단 편집) ==== 3차 집권: 49대 총리, 1895 ~ 1902, 7년 16일간 ==== 이후 1892년 벌어진 총선에서 자유당이 아일랜드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의회에서 다수를 점함에 따라 솔즈베리는 다시금 총리직에서 사퇴해야만 했지만 다음 선거였던 1895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면서 세 번째 총리직을 맡게 된다. 3기 내각에서도 솔즈베리는 외교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. 소위 '찬란한 고립(Splendid Isolation)'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 영국의 외교적 고립주의를 이끈 것이 바로 솔즈베리 본인. [[파쇼다 사건]]으로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뻔도 했지만 솔즈베리는 뛰어난 협상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양보를 얻어냈으며 [[보어전쟁]]을 승리로 이끌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상당 부분을 유니언 잭 밑에 위치시키는 데 성공했다. 다만 임기말인 1902년에는 찬란한 고립을 스스로 깨고 러시아에 대항해 일본과 최초로 근대적 동맹관계인 [[영일동맹]]을 맺는다. 한편 내치에서도 몇가지 주목할 만한 정책이 수립됐는데, 아일랜드에서 온건한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소작농들의 불만을 완화시키는 한편으로 장애 아동을 위한 공립 교육 기관을 수립했다. 이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기고 난 뒤인 1902년 솔즈베리는 건강 상의 문제를 이유로 총리직에서 사임한다.[* 본인의 건강도 건강이었고, 아내의 사망에 따른 정신적 충격도 컸다고 한다.] 그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오른 인물은 그의 조카이자 후일 [[제1차 세계 대전]] 시기 외무장관 직을 역임하면서 [[시오니즘|유대인들의 국가 설립]]을 약속한 [[밸푸어 선언]]의 당사자 [[아서 밸푸어]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